2017년 3월 3일 금요일

[롤] 원딜은 저티어일수록 안 좋다

롤 커뮤니티, 그러니까 롤 인벤에 '티어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라는 글을 올리면 보통 포지션 별로 이런 얘기가 나온다.

탑 : 딜 쎈 애들 해서 니가 터뜨려
정글 : 딜 쎄고 갱킹 쎈 애들 해서 초반에 터뜨려
미드 : 라인 폭파하고 로밍 다녀
서폿 : 딜서폿 해서 라인 터뜨리고 로밍 다녀

여기서 공통점을 추리자면, "팀 의존도가 낮으면서 캐리력 좋은 챔프를 골라서 캐리해라" 가 된다.

롤 역사를 두고 살펴보면, 팀 내에서 캐리력이 낮은 라인이 유틸리티를 챙기는 경향을 보인다.

탑이 약할 때는 탑에서 팀을 보조했고,
정글이 약했을 때는 탑이 딜을 하고 정글이 탱을 했으며,
미드가 약하고 원딜이 강할 때는 원딜이 딜을 전담하고 미드는 원딜을 받쳐줄 수 있는 유틸 픽(대표적으로 룰루)을 했으며,
캐리력 낮은 라인의 대명사 서폿은 초창기부터 강한 CC기로 무장한 챔프를 골라서 유틸을 전담하다가, 서포터 포지션의 상황이 나아지면 딜러도 했다가 유틸성 픽도 했다가 한다.

지금 원딜 챔프 중에 딜을 보고 뽑는 챔프라고 하면 바루스 정도일까? 진이나 애쉬는 명백하게 팀을 보조해주는 유틸성 픽이다. 진은 원거리 속박 및 슬로우 달린 궁을 통한 지원, 애쉬는 궁극기의 장거리 스턴을 이용한 이니시 담당 픽. 이외의 원딜은 거의 사장되었다.

객관적으로 현재 원딜라인의 캐리력은 낮은 게 맞다. 역사적으로 캐리력이 낮은, 낮아진 라인에서 유틸리티를 챙기는 경향이 있어왔고, 그 경향이 지금 원딜라인에서 보이고 있으니까.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했던 실험 결과대로 , 자기 맞라이너보다만 실력이 좋다면 티어가 오르기는 한다. 다만 한 게임 한 게임의 승패는 본인이 결정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울 것이고, 특히나 후반이 되어야 화력이 나오는 원딜러들은, 빨라진 게임 템포 때문에 본인의 타이밍이 오질 않게 되어버려서 더더욱 승패는 봇 라인과 관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벤 등 롤 커뮤니티에서 원딜 캐리력 논란이 나올 때마다 "니가 티어가 낮아서 캐리가 안 되는 것"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결론만을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상위 티어에서 보여주는 과감한 움직임은 팀이 그만큼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제(3월 2일) 있었던 롤챔스 SKT 대 kt의 경기 말미에 나왔던, 인터뷰에서 뱅 선수가 "어그로를 끌기 위해 시전한 것"이라고 했던 면상궁 장면. 궁을 켜자마자 팀원들로부터 각종 쉴드가 들어왔음에도 뱅은 개피가 돼서 점멸을 쓰며 전장을 이탈했다.

이 장면이 하위 티어에서 나왔다고 생각해보자.

쉴드? 당연히 안 들어온다. 어그로는 끌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적에게 온갖 스킬 다 처맞고 그대로 산화하게 된다. (물론 이 장면에서 뱅이 어그로를 조금이라도 더 끌고자 딸피인 상태로 딜도 제대로 넣을 수 없는 상황인데 어슬렁대다가 결국 죽었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뱅 선수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대로 그냥 우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편이 결과적으로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플레이도 팀이 그만큼 받쳐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원딜은 여전히 강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분명히 해두자. 요즘 메타에 장기전은 잘 나오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게임의 길이는 40분 정도이다. 그러나, 게임 길이가 40분이라고 해서 게임의 승패가 실질적으로 결정되는 시간도 40분인 것은 아니다.

게임의 승패가 언제쯤 결정이 되는가? 롤챔스를 보고 있을 때 해설들이 승패가 기울었다는 말을 언제쯤 하는가?

대체로 게임 길이의 절반 정도 되는 시점, 40분 게임이라면 20분, 이르면 그것보다도 빨리 승패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역전이 안 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이 시점까지 드러난 우위가 승패로 연결된다.

이걸 원딜러 시점에서 보면 이렇게 된다.

대략 15분 정도 되면 각 라인의 승패가 거의 확정된다. 진 라인도 있을 것이며 이긴 라인도 있을 것이고 비긴 라인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봇 라인전을 이겼다. 그러나 적 미드가 라인을 쓱 밀더니 정글과 함께 봇에 나타나더니 4인 다이브를 당해 서폿과 함께 죽었고, 그대로 봇 타워가 날아갔다. (운이 안 좋으면 여기서 포블도 같이 나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우리 팀과 상대 팀이 평균적으로 코어템 반 개 ~ 한 개 정도의 격차가 나고 있었고, 이 격차가 쭉 유지되어 40분에 접어들어도 격차가 줄어들질 않아 결국 지고 말았다.

롤 인벤을 보면 "브실골은 이기는 팀에서 처던져대기 때문에 후반까지 게임이 비벼지는 일이 많고, 따라서 원딜이 티어를 올리기에 나쁘지 않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만 들어보면, 상대만 브실골이고 우리는 다마챌프비라도 되는 듯 하다.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팀도 브실골이다. 상대가 던지는 만큼 우리 팀도 던지며, 심한 경우에는 승패의 윤곽이 드러남과 동시에 서렌 투표를 부쳐서 스스로 넥서스를 터뜨려먹기도 한다. 단순히 시간이 늘어지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와 상대의 코어템 갯수 차이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런 게임이 50분 간다고 해서 서로 풀템이 될까? 상대는 풀템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3.5코어 4코어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4코어 원딜이 4코어 미드에 비해 한타 기여도가 높을 수 있을지도 장담을 못하는데 5코어 미드를 상대로 3.5코어, 4코어 원딜이 한타를 뒤집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이런 게임은 설사 3시간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후반에 들어간 게 아니다.

원딜은 왜 방템 안 올리냐고 빼애액 대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3월 2일) 뱅의 인터뷰를 곰곰히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뱅은 원딜러가 방템을 올리는 건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고 닌자 신발을 올린 이유를 수치적 근거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그걸 듣고도 뭔가 느끼는 바가 없는가 말이다.

5코어 뜬 미드를 애초에 방어스탯이 허접한 원딜러가 방템 하나만 끼고 딜을 받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차라리 안 맞을 생각을 하고 딜템을 올리는 편이 낫지. (물론 3월 2일 SKT vs kt 3경기처럼, 이퀄라이저 미사일처럼 확정적으로 처맞을 수밖에 없는 스킬이 있다면 당연히 데프트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방어적 아이템을 둘둘 말아올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원'딜'러로서의 의미는 없어질 것이다. 데프트니까 그나마 그 정도라도 딜을 해냈던 것이지.)

요즘 메타에서 원딜러가 생략할 만한 공격 아이템이 거의 없다는 것도 고려해보자. 하드CC 하나 없는 조합은 거의 안 나오니까 (도미닉 또는 필멸자) - 시미터 이 두 아이템은 일단 가야 하는 아이템이며, 평타원딜이라면 무한의 대검 - 공속치명타템 정도는 올려야 한다. 이 템트리의 AD가 예전 같지가 않아서 여기에 수호 천사를 제외한 다른 완전한 방템을 올리는 게 꽤나 부담된다는 것도 생각해보자. 스킬원딜이라면 요우무 - 밤의 끝자락 정도는 올리며, 챔프에 따라 드락사르를 우선할 것인가 선택하는 정도이다.

보통 4코어 타이밍까지 오게 되면 이제 원딜러의 캐리력이 다른 라이너들에 비해서 조금 더 나아지는 정도가 된다. (AP템이 싸지면서 미드 AP 메이지의 4코어 타이밍이 약간 빨라지기도 했고, 미드가 AD챔프라면 뭐 말할 것도 없다. 똑같이 요우무-밤끝-방관-시미터 올린 미드 AD챔이 같은 템의 원딜보다 캐리력이 후질 것이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나?) 여기서 공템 대신 방템을 올리는 건 팀의 딜을 맡아야 하며, 생존은 팀원들의 도움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원딜러한테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그나마 뱅의 경우에는 페이커의 제드가 거의 모든 어그로를 다 끌었기 때문에 방템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이 작용해서 신발을 팔고 3방관템+도미닉+멜모셔스+고사포를 올릴 수 있었다. 고사포 대신 방템을 올렸다면?




원딜은 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포지션이다. 그리고 게임이 비등한 상태에서 장기전으로 들어가야 캐리력이 나오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하위티어로 갈수록 나를 잘 받쳐주는 팀, 그리고 그들이 터지지 않아서 내가 활약할 판이 깔리는 게임, 잘 안 나온다.

잊지 말아라. 원딜 캐리력 논란이 있기 이전에도, 골드까지는 미드 정글 하고 플레부터 원딜하라고 추천했던 것이 바로 인벤러 당신들이라는 것을.


댓글 없음:

댓글 쓰기